3R
왜 한다 했을까?
싱어게인을 위해 들인 시간이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오디션 프로를 하게 되면 삶의 대부분의 에너지가 경연 준비에 쏠리게 된다. 단기간 안에 준비해야 하는 선곡과 편곡 그리고 노래. 현재 라운드를 잘 해 다음 라운드를 가게 된다면 매번 더 잘해야 하는 다음 라운드. 매 라운드가 대부분 2주에서 3주 정도 기간으로, 경연의 순간 그 3분을 위해 달려가는 상황이 누군가에겐 즐거움이기를… 느릿하게 신중하게 결정하며 사는 거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런 빡빡한 일정을 환영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내가 결정한 거니까 누구에게 불만을 표할 수 있을까.
회사는 회사대로 내가 부를 수 있을 만한 곡들 리스트를 추려서 주기도 하고 주변에서 주기도 하고 선곡을 위해서 이런저런 추천을 주면서 최선을 다해서 이 과정을 버틸 수 있게 도와주고 있었지만.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하고 결과와 과정도 내가 책임져야 할 몫이니 누군가에게 심적으로 상황적으로 의지하기 어려웠다. 사소한 일들이 계속 뒤로 밀리고 중요한 연락이나 약속을 지키기도 힘들었다. 내 머릿속은 이미 한계에 와 있는 듯, 빠져나갈 곳이 없이 갇혀 있는 답답한 마음이 3라운드 준비의 첫 한 주일이었다.
그래도 여러 곡을 준비해 불러봤다. 아무리 이래저래 불러봐도 부르는 나도, 불리는 노래도 살아있는 느낌이 아니었다. 왜 그럴까? 의욕이 없어서? 아니 어쩌면 앞선 의욕을 감당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위기와 정서를 이미 1라운드와 2라운드에서 이미 다 보여준 것 같았다. 더 이상 뭘 할 수 있을까?
글쓰기 작업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이승열 님이 문득 생각 나 이승열 님의 앨범을 쭉 들으며 밤길을 왔다. 가장 최근 앨범을 한번 쭉 듣고 다시 가장 초창기 앨범을 쭉 들었다. 기다림 이라는 곡이 묘하게 느껴졌다. 유튜브에서 기다림의 라이브 버전을 찾아봤다. 엠넷에서 오래전에 부른 라이브 버전이었다. 멜로디와 구성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나의 음악의 결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밝지만 어둡고 절망적이지만 희망적인 색채를 다 가지고 있는 신기한 노래. 하지만 느낌으로는 알 수 없다. 일단 머릿속에 저장.
그렇게 준비 기간 3주 중 첫 한 주일이 지났다. 왜 이렇게 스스로 답답함을 느끼던 찰나
“잘 하고 있냐?” 진주 누나가 전화를 줬다.
“어땠어?” 신호에게 카톡이 왔고
“잘했음?” 지나가던 동은이가 물었다.
2라운드가 끝나고 아무 연락이 없던 내게 몇몇이 연락을 주었다.
그렇게 내일 당장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던 나는 일단 진주 누나와 편곡 약속부터 잡았다. 그래, 일단 하고 생각하기. 전화를 끊고 숨통이 트이는 것을 느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마음이 우울감 속에 잠겨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스스로 너무 자책하느라, 내 상황에 칭얼거리느라 마음이 어느 순간 물에 잠기듯 빠져 있었나 보다. 누군가의 안부 한마디가 나의 멱살을 잡고 공기 위로 끌어 올려 숨통을 트이게 했다. 신기한 경험.
그렇게 진주 누나와 다시 회동. 곡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여서 일단 그냥 부탁했다. 이런저런 곡들을 계속 불러보고 시도해봤지만, 와닿는 게 크게 없었다.. 어쩌지.
“누나 혹시 내일은…”
“내일? 괜찮을 것 같은데?”
와… 굽신굽신… 진짜 감사했다. 내일 오후 시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날 저녁, 작업실에서 기다림의 후반부를 부르다 4분음표 박자로 밴드가 동시에 심플하게 들어오면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은 되는데 이게 구현이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날 기다림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만들어 가봤다. 곡의 스케일을 조금 크게 만들어봐야 할 것 같아서 나의 미디 실력으로 드럼을 쳐보려 했지만 실패.
“드러머가 쳐보는 걸 들어봐야 할 것 같아. 그래야 발전을 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 직접 쳐볼 사람 누구 없나?” 진주 누나의 훌륭한 의견 칭찬합니다.
“주호 어때요?”
“오, 좋아!”
‘따르릉….’
“주호야. 지금이 오후 다섯 시긴 한데 너 혹시 오늘 시간이 어떻게 되냐, ㅋㅋㅋ”
“어? 오늘 일곱 시 이후에 뭐 없어.”
“아 그래?”
그렇게 주호 작업실로 장비 챙겨 바로 출발. 일곱 시 도착. 그렇게 진주 누나, 주호와 나 셋은 주호 작업실에서 편곡을 시작했다. 역시 드럼은 기계로 하는 것 보다 사람이 직접 치는 악기일 때 가장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악기다. 이리도 수월할 줄이야. 너를 능력자 3으로 칭하겠다.
“심플하게, 쾅! 쾅! 쾅! 쾅! 쳐줘”
“진짜?”
“응, 그냥 다른 거 필요 없이 그렇게 가보는 거 어때”
“아…. 알았어.”
친구가 느끼기엔 편곡의 방식이 자연스럽지 않아 보였는지 무의식적으로 중간에 박자들을 쪼개어 넣었다
“주호야 중간중간에 고스트 쳐주는 거 다 빼고 정박에만 쳐줘”
“그냥? 이렇게?”
“응 그거 좋다!”
내 머릿속을 꺼내서 보내줄 순 없으니, 고집을 부려본다. 아마도 괜찮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다. 일단 해봐야 한다. 확실하진 않지만, 될 것 같은 이 기분. 다음날 다시 친구 작업실에 가 제대로 녹음을 받기로 하고 우선 일차적으로 녹음을 받아 밤에 작업실로 돌아갔다. 밤 12시.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진주 누나의 피아노와 주호의 드럼 위에 가볍게 일렉기타를 쳐본다. 다양한 소리로 레이어를 쌓고 쌓는다.
다음날. 전날 밤 트랙을 다시 정리해 주호에게 갔다. 오후에 만나 본격적인 녹음 시작. 그렇게 드럼 트랙을 저녁에 받기로 하고 집에 온다. 오는 길에 동은 이에게 연락했다.
“동은아 일렉을 쳐야 할 것 같은데 아이디어가 필요해. 지금 드럼 트랙이 완성이 안 되긴 했는데 일단 시간 돼?”
MR 작업을 위한 편곡과 수정 작업의 순서는 이렇다. 1) 코드 및 구성 편곡 2) 대략적인 악기 가이드 녹음 3) 드럼->베이스->건반->기타 순으로 리얼 악기 녹음. 하지만 이 오디션 프로에서의 작업의 순서는 1 -> 2-> 3… 231232 수정수정수정수정…
뭐 어쩌겠나. 인생이 그렇게 순서대로 된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뒤죽박죽 퍼즐을 잘 풀어가 보기로.
내 감정을 담을 수 있을만한 충분한 MR이 나오려면 내가 낼 수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기타 톤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동은 이는 기타를 잘친다. 현장 기타는 내가 치더라도 더 좋은 톤을 위해 친구의 기타 실력을 사용해 보기로 한다.
“내가 이렇게 쳐볼게” “이건 어때” “야 틀어봐”…. 이 친구 알아서 잘해준다. 너무 좋다. 맛있는 밥을 사준다. 그리고 친구가 기타도 빌려줬다. 넌 능력자 4다. 아, 이 무슨 복인가. 2라운드 끝나고 중고로 일렉기타 페달을 하나 샀는데 그것도 쓰기로 했다. 아싸. 안 샀으면 큰일 날뻔했다.
곡이 완성이 되어가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완성된 편곡은 심플하면서도 확실했고 동시에 모호했다. 반복되는 단순한 리듬과 화성의 조화로움이 좋았다. 그 속에서 계속 살고 싶었다.
겨우 정신 차리고 데드라인 맞춰서 또 MR 완성.
난 왜 이리 작업속도가 느린 것인가. 아. 첫 주를 날렸지… 하하. 그보다 내가 이런걸 할 수 있다는 것에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노래만 잘하면 된다.
지난 라운드와 패턴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이틀 남기고 제대로 연습 시작. 가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하다. 리허설하고 돌아와 다시 작업실. 경연 전날 밤 노래를 부르는 데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2주 내내 이 곡을 붙들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조금 이해하는 것 같은 느낌.
경연 날이다. 대기는 익숙해진 듯하다. 한순간에 나랑 윤혁이 순서.
내가 선공. 그냥 했다. 가진 거 열심히 불렀다. 누군가의 기다림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노래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열심히 기타 치면서 부르고 나서는 오히려 너무 과하게 준비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까지 MR에 노력을 들이는 게 맞았는가 순간 갑자기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윤혁이 차례였다. 심호흡 깊게 하더니 “내~~ 사~~ 랑…” 미쳤다. 노래를 어떻게 저렇게 하지. 뒤통수 한 대 맞은 느낌. 아니 내가 그렇게 터뜨렸으니, 윤혁이가 반대로 잔잔하게 밀도 있게 노래를 불러버리면 난 어쩌라고….
근데…. 이겼다.
다음라운드 까지 유통기한이 늘었다.
집오는 길엔 생존의 기쁨 보단 다음 라운드 걱정.
아 그만 칭얼 거려야 하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