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R
1라운드 경연이 끝난 이틀 후
2라운드의 미션 발표를 위해 오전에 촬영장을 갔다.
사람들이 많았다. 77명이 바글바글. 하나둘 차례로 제작진이 짝을 지어주었다. 하나 둘 자신들의 짝을 . 내 짝은 어디 있나…
“58호님”
“네!”
“58호님은 47호님과 짝이 되시겠습니다”
47호란다. 며칠 전 밤에 나랑 대화한 친구. 이 무슨 운명인가…. 까지는 아이고, 그냥냥 작은 신기함ㅋㅋ(이것도 이 글을 쓰다 깨달았다) 그리고 대결은 윤혁이랑 수빈이란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첫 만남이라 어색하게 대화하며 우리의 미션인 90년대 곡을 하나씩 이야기해 보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공통되게 아는 곡을 먼저 이야기해 보는데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 자리에서 두어 시간 정도 맞춰보고 앞으로 작업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이야기하고 그랬다.
둘이 바람 쐬러 나가는 길에 윤혁이랑 수ㅂ.. 아니 49호 녀석이 화기애애하게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윤혁이가 치는 기타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기타를 잘 친다. 그리고 예전 노래 요즘 노래 하나같이 다 잘 불러서 놀랐다놀랬다. 수빈이야 말해 뭐하나. 결론은 상대 팀도 만만치 않음…. 하여튼 뭐든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내 앞가림 하기도 바쁜데 남 생각해 뭐하나.
47호의 뮤지션 이름은 ‘테종’이었다. 음악도 들어보고 서로 어떤 음악 좋아하는지도 들어보고 밥도 먹고 그러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슈밴 생각이 났다. 보통 팀전에서 체크해야 하는 리스트가 있다. 1) 각자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동시에 서로의 단점을 잘 가리고 2) 그러면서 음악적으로 전달까지 잘 돼야 한다. 말은 항상 쉽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다행이 테종이는 조용하게 있다가도있다가도 자기 할 말은 다 했다. 자기 고집이 있어서 대화를 이어가고 아이이야기하는 게 재밌었다.. 수월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선곡을 시도 했을 때 계속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있었으니까. 몸이 조금 피로했지만,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널 보고 있으면’이라는 곡을 하기로 했다. 원곡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지고 가다 중간에 느낌을 바꿔서 변주하는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를 냈는데, ‘좋은 것 같다’라고 테종이가 말해줬다. 난 믿지 않았다. 칭찬을 잘 믿지 않는 편. 하지만 이거 이상으로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가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나쁘지 않은 방향의 편곡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이 방향으로 진행해 보기로 한다.
편곡의 분위기나 방향을 어느 정도 잡힌 후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나와 태종이가 함께 통기타를 칠 때 어떤 부분을 어떻게 칠 것인지? 코드 진행? 가사는? 멜로디는? 뭐 등등 만나면 먹고 편곡 먹고 편곡 다음 날 그다음 날 또 반복… 그렇게 진행을 계속했다. 뭔가 수월하게 진행이 되는 것 같았지만 내 머리 한편엔 나의 편곡에 대한 불신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게 진짜 좋은 편곡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판단할 수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했고 말이다… 잔잔한 곡을 누군가에게 처음 들려주면 좀 더 자극적인 표현이 가미된 음악들에 비해 즉각적인 반응이 잘 나타나지 않아서 불안할 때가 자주 있다. 이 곡도 그랬다. 테종이나 같이 담당해 주는 작가님이나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 편곡을 들려줬을 때 나오는 특유의 침묵이 있는데 이건 은근히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지금 난데, 일단 가자. 테종이도 좋다 그랬다.
아무튼.. 그렇게 편곡의 틀이 완성될 때쯤 진주 누나에게 다시 한번 연락했다. 바로 다음 날 시간 빼고 와줘서 30분 만에 끝내고 수다 떨다 퇴근… 아우 능력자… 그리고 나서 바로 두 번째 능력자, 솔이에게 연락했다.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었지만, 일단 해보고 생각하기.
테종이랑 1라운드 음향적인 이야기를 하다 각자 어떻게 어쿠스틱 기타 위에 MR 준비를 했는지 이야기를 했다. 테종이는 내가 1라운드 했을 때 처럼 하면 어떻겠냐 해서 바로 그러자 했다. 우리는 팀. 테종이가 좋다면 가는 거다. 복잡한 장비를 다시 한번 챙겨본다. 약간 귀찮은 척 했지만 그래도 노력해서 만들었는데 또 쓰니까 솔직히 기분 좋았다.
MR 제출 이틀 전 밤에 솔이를 만났다. 솔이를 만날 때는 기한이 며칠 남지 않아서 거의 90퍼센트 경연에 필요한 MR이 완성이 되었다 생각하고 여기에 뭘 추가 할 수 있을지 미심쩍은 상태였다. 가지 말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 몰라서 그냥 만났다. 해볼 때까진 내 생각대로 판단하지 않기. 솔이는 이런저런 악기를 막 혼자 연주하고 갔다 넣어보기 시작했다. 나는 온갖 손짓 발짓 말짓을 써가며 내가 생각하는 그림을 대화 하며 다양한 퍼커션 소리를 넣어보며 기존 분위기에서 좀 더 업그레이드 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솔이의 작업물을 가지고 후반 작업을 하다 보니 이 정도 디테일이라면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우리 쪽으로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을 거란 묘한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바로 새벽에 작업실 가서 밤새 작업하고 다음날 바로 다시 작업실에서 마무리 작업 하고 전송.
전쟁 같은 오디션 인생. 그렇게 겨우 해야 할 일을 끝내고 경연이 이틀 남은 시점 우리는 제대로 연습을 시작했다. 편곡 작업을 때쯤 피곤해서 설렁설렁 연습을 하려 했지만 테종이가 12시부터 온단다. 우리는 팀, 테종이가 하자면 하는 거다.
연습을 하고 리허설이 끝나고 나서도 연습을 또 하자 한다. 천상 여유로운 인상과 걸음걸이를 가지고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게 음악을 한다. 대단한 친굴세. 그렇게 경연 전날에도 밤 열 시까지 연습하고 하고 집을 갔다.
드디어 경연 당일. 경연 무대 위에 올라가기 전에 어두운 대기 공간에서 약속한 듯이 각자의 부분을 연습했다. 계속 같이 연습만 했지 개인 연습이 부족 했었나 보다. 그렇게 무대 위에서 노래를 시작했다. 확실히 무대 위에 혼자 있는 것보다 함께 함께 할 대상이 있는 게 심적으로 편안했다. 긴장도 별로 안 한 채 무대를 잘 끝내고 다음팀 차례. 잘한다. 어쩜 화음도 잘 맞추고 음색도 좋고 기타는 왜 저래. 어머 어머..
상대방이 어떻게 할지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우리가 가진 거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너무너무 다행이었다. 서로가 가진 게 너무 재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고 지는 게 상관없는 듯 열심히 했다. 하지만 경쟁 사회에서 어쩌겠나. 그래도 어떤 평가나 결과든 괜찮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경연이 서로 다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마음이 편안했다.
5:3. 기분은 좋다 하하. 무엇보다 테종이가 나 때문에 지거나 떨어지는 상황에 놓이면 너무 미안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살아남아서 너무너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미안함은 수빈이한태 떠안긴 느낌이었지만 그마저도 윤혁이가 살아남아서 기분이 더 좋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안하고 그럴 것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끝낼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경연의 수명을 조금 늘린 채 그렇게 또 두 번째 경연의 하루가 끝났다.
그다음 라운드가 나에게 어떤 것일지는 생각도 못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