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R
“이번에도 잔잔하게 시작해서 뒤에 터지고 그렇게 하니?”
“네 맞아요. 엄마 ㅋㅋㅋ 사실 싱어게인 하면서 앞뒤 생각 안하고 그냥 매번 제일 맘 편하고 잘 보여 줄 수 있는 거 해야지 생각하면서 하고 있어요”
나는 원래 도전하고 다양한 걸 시도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몸을 내던져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곳으로 가보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그러면서 배우고 성장하다 시간이 지나 좀 더 어른이 되어있는 내 모습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 경연을 하면서 스스로 한 다짐이 있었다. 너무 과한(?) 도전을 하지 말자 하하하.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에서 잘 꺼내서 해보자! 그리고 후회가 없게 끝까지 붙들고 집착해서 가자.
결론은 돌아 돌아 선곡이 중요했다. 처음엔 할리우드영화처럼 한순간에 사랑에 빠져버리듯, 곡을 듣자마자 ‘이거다!’ 싶은 순간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보니 나의 기분이 참 중요했다. 하지만 4라운드까지 하고 보니까 영화는 영화일 뿐. 전체 선곡 과정에서 놓친 좋은 곡이 있을까 생각이 들어 이번 경연에서 선곡 하지 않았던 곡들을 다시 들어봤다. 근데 들어도 모르겠다. 깨달음이 온다 해서 나의 안목이 따라오진 않는 현실….문제는 이번 라운드는 라이브 밴드가 같이 해야 해서 편곡 시간이 더 짧았다. 연주자 분들이 연습할 시간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라이브로 공연하면 현장 분위기는 더 좋겠지만 경연자 입장에선 고민거리가 몇 가지 더 생긴다. 애가 탈 수 밖에. 선곡도 도와주질 않는다.
이 퍼즐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을 하다 드럼, 베이스, 건반 세 명을 동시에 불렀다. 라이브 밴드를 위한 편곡이니까 라이브 밴드를 앉혀놓고 같이 선곡도 하고 편곡을 하면 고민의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건이, 민선이, 채림이 능력자 동생들 5, 6, 7호라고 명명하겠다. ㅋ. 이 셋과 함께 미리 생각했던 곡들과 등등 해서 몇 곡을 불러보았다. 바로 선곡이 되리란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역시 한방에 되는 건 없다.
그렇게 고민 또 고민하다 2라운드 때 들어봤던 ‘옛 친구들에게’를 들어봤다.
어라, 이게 이런 곡이었던가. 멜로디가 좋아 보인다. 기다림처럼 멜로디와 후렴이 각자 존재 하지만 하나의 곡으로 연결되어서 공존하는 느낌. 가사도 괜찮은 것 같은데…. 동생들을 한 번 더 만나서 이 곡을 시도 해 보기 전에 하진이와 이 곡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하진이 작업실에서 이런 저런 음악도 듣고 이야기 하면서 ‘옛 친구에게’ 곡의 멜로디나 정서와 비슷한 곡들을 찾아보고 들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만난 장르가 컨트리였다. 미국식 컨트리가 아닌 한국식 컨트리니까.. 한국식 시골 음악 정도라 할 수 있겠다. 하하. 이 곡의 벌스가 가진 외로움과 헛헛함이 이 시골 음악 장르에서 줄 수 있는 음악적인 여백의 미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곡의 앞부분은 이 정도면 발전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중반부로 넘어가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길이 있어 보였다. 그렇게 하진 이와의 대화를 통해 곡의 방향과 힌트를 잔뜩 얻어서 작업실에서 열심히 작업. 다음날 곧바로 567호를 앉혀놓고 편곡을 마무리했다.
같이 연주하며 녹음하고 듣고 다시 연주 하고 듣고 연주 하고 듣고. 그렇게 1절부터 후렴까지는 수월하게 완성. 그다음 구간의 퍼즐이 잘 풀리지 않았다. 비가 내리는 날에 느끼는 애틋한 우정의 감정은 무엇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은 무엇이고 어떻게 정리가 되는 것일까? 원곡이 가지고 있는 곡의 속도를 바꾸면 원래의 정서와 차이가 너무 많이 났기 때문에 기본 박자는 계속 유지하고 가야 했다. 내 마음이 울리는 표현은 무엇일까. 그 멜로디와 가사의 감정을 부르는 나의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기본 템포를 유지하면서 통기타를 3박자 느낌으로 쪼개서 쳐봤다.
“괜찮은데요?” 드럼 치는 민선이가 칭찬해 줬다.
“그래? 음…. 그러면 여기를 이렇게 작게 시작해서 점점 크게 가서 터지는 쪽으로…. 이 박자 틀로 해서 한번 해보자” 그렇게 만들어진 빠른 움직임의 반주 위로 길게 뻗어나가는 용서 해달란 멜로디는 말로 설명 하지 못할 감정을 주었다. 왠지 곡의 가사의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여전히 검증 안된 나의 감이지만 일단 간다. 나를 믿고 간다.
그렇게 시작된 후반부 편곡. 밤 아홉 시에 시작해서 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곡의 전체적인 그림을 다 그려볼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 후 다시 주호에게 드럼을 부탁해 최대한 내가 원하는 분위기로 다시 정리를 해본다. 통기타 녹음도 다시 하고 퍼커션도 넣고 등등…. 정리를 해서 합주 날 하루 전 겨우 합주용 음원을 보냈다.
합주가 너무 긴장이 됐다. 녹음하고 만든 반주를 틀고 하면 내가 원하는 악기의 톤부터 발란스 까지 디테일하게 맞추고 가기 때문에 무대 밖으로 어떤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갈 수가 있다. 하지만 밴드가 라이브를 함께 하는 순간엔 믿음이 필요하다. 밖에 소리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불안하고 궁금하지만 그걸 아직 생각할 겨를은 없다. 좋은 분들을 믿고 가야 한다. 낙하산을 차고 필요할 때 잘 펴질 것이라 믿고 몸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 모든 걸 알고 사는건 아니니. 그러니 그냥 한다.
기타도 예전에 쓰던 기타를 다시 들었다. 나에겐 2대 중반부터 6-7년 동안 어딜 가든 들고 다녔던 기타가 있다. 많은 연주자가 흔히 말하는 ‘전투용’ 기타. 그 기타는 지금은 여기저기 갈라져서 언제 제 기능을 못 할지 알 수 없는 조금 위태위태한 기타다. 혹시 더 고칠 수 있을까 싶어서 리페어 샵도 가봤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더는 고치기가가 애매하다며…. 내가 잘 관리를 해주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이 기타를 대하는 태도가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 순간에 이 기타로 이번 라운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녹화 중간에, 경연 중간에 기타 터질 수도 있겠다 하는 고민이 들 정도였지만 이 곡과 이 순간만큼은 이 기타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렇게 기타 줄도 새로 갈고 먼지도 닦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관리를 해주고 그 기타를 경연날 들고갔다.
수빈이가 먼저 노래를 부른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노래다. 상남자 소수빈. 자기가 나랑 한다고 도발해 놓고 엄청 멋있고 잔잔한 노래를 해버린다. 어쩜 저렇게 세상 혼자 멋있게, 너무하다.
그렇게 나의 차례. 여전히 매 라운드 시작 전에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건 좋은 편곡인가?’ ‘노래를 내가 왜곡시키는 건 아닌가?’ ‘터지는 구간이 조금 과한가?‘ 등등…. 많은 생각들이 들지만 결국 그 생각들을 다 걷어낸다. 어떤 중요한 일들이든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을 얼마나 걷어내고 있는 대로 하느냐가 나에겐 이 싱어게인에서의 승패를 아니 그 노래에 순간에 진심을 담는 방법이라는걸 다시 배우며 이 경연프로의 삶을 산다.
그렇게 몰아치듯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5라운드도 끝났다.
매 라운드가 넘어야 할 허들이 있다. 어떻게 어떻게 잘 넘어가고 있다고 생각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 허들이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벽으로 느껴지기 전까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