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R
‘숲’을 하기로 했다.
여러 곡들을 들었지만. 이 곡이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복잡하고 꼬여있는 듯한… 요동치는 감정이 차분하게 나열되어 있는 듯 느꼈고 지금의 나 같다고 생각을 했다.
기본적으로 3박자 패턴으로 가는 노래들은 좀 더 내 옷 같다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사랑 노래나 직접적인 위로의 내용의 노래는 끌리지 않았다. 그냥 1라운드는 지극히 하고 싶은 방향으로 내가 의도한 방식을 할 수 있게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기타도 빼고 노래를 할까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내 담당 작가님이 기타도 멋있을 것 같다고 해주셔서 어떻게 할까 하다 다시 기타를 치기로 마음 먹었다. 맞다. 나는 기타를 잡고 노래 한 기간이 참 길다.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워 보이는건 인정.
기타를 왜 안 들고 싶었을까? 왜 노래만 하고 싶었을까? 를 생각해 보자면
‘새롭게 보이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고 약간 굽어있는 어깨와 흥분해서 노래를 부르면 어느순간 거북이가 되어있는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살짝 아쉬운 마음이 있었고 왠지모르게 그 모습을 약간 숨기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그게 지금 나니까.
받아들이기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지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경연 나가서 민망하면 안되니까 그래도 하는김에 잘 해야 하니까! 우선 상황을 파악을 해보자면 1) 출연자 전원은 각자의 노래에 반주를 가져와야 한다. 2) 반주에는 MR, 악기 연주 모두 포함된다… 그럼 결론은 내 목소리의 장단점 그리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방향에 맞춰서 무조건 만들어야 가장 설득력이 있다는 뜻. 우선 가장 맘 편하게 부탁 할 수 있는 진주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후 보기로 했다. 편곡은 시작도 안 했고 곡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 전화를 했다. 뭐라도 나올 테니, 일단 해보자.
그렇게 혼자 편곡을 시작했다. 다른 악기들로 시작하는 편곡이면 누군가의 도움이 좀 더 필요할 테지만 지금은 통기타와 노래를 부르면서 하는 곡이니까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 할 수 있다. 마음을 다잡고 시작했다. 삼 일 동안 같은 노래를 부르며 어떻게 발전을 시킬지 연구를 해봤다. 초반엔 통기타로 전반적인 템포를 유연하게 잡고 노래를 부르다 중간부터 건반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연주자가 도와주지만 혼자 해야 한다. MR 타이밍을 내가 맞춰 직접 틀어야 할 것 같았다. MR이 처음부터 곡과 함께 시작하면 어렵지 않다. 들으면서 따라가면 되니까. 하지만 중간부터 MR이 나오는 건 조금 까다롭다. 물리적으로 실행해 본 적은 없지만 상상으로는 가능해 보였다. 지금 있는 장비에서 저렴한 스위치만 하나 사면 왠지 될 것 같았다. 머릿속으로는 확실하니까, 일단 해보자는 마인드. 난 이리도 낙천적이었던가.
며칠 후 대략 구성을 만들어 놓은 기타 위에 진주 누나의 피아노를 얹었다. 심벌에 말렛으로 조금 더 효과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심벌을 빌렸다. 그렇게 통기타와 건반과 심벌의 효과를 넣은 MR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MR의 정서가 내가 노래를 부르기 좋은 배경을 그려줬다. 불안했던 마음 한 껍질이 사라지고 그다음 숙제는 스위치. 다음날 스위치를 사고 밤늦게 작업실에 왔다. 두어시간 이래저래 프로그램도 깔고, 케이블 연결도 하고, 미디 설정도 하고, 앱도 깔고 이리저리 서너시간이 흘렀다. 된다… 아니 이게 되네… 오호라 신기…
(사실 경연 영상에는 그게 보이지 않는다. 노래하는 거만 보이는데 오히려 좋다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하는 모습의 뒤에 있는 복잡한 건 사실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렇다)
그렇게 복잡한 장비들을 바리바리 싸서 경연하러 갔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보훈도 있었고 익숙한 얼굴들이 몇 명 있어서 눈빛만 봐도 있는 특유의 동질감을 경험하면서 노래도 듣고 과자도 먹고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오디션도 차례. 오디션도 다들 참 노래 잘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부르는지조차 생각할 새도 없이 내 차례가 왔다.
바리바리 장비들과 기타를 들고 앉았다. 아, 너무 떨렸다. 역시 평가받는 자리는 참 어렵다. 왜 이리 심사위원석이 멀리 보이는지… 하여튼 눈 질끈 감고 노래를 시작했다. 사실 딱히 기억나는 장면들은 없다. 바닥만 보고 무의식적으로 눈을 들었는데 심사위원석에 A가 하나가 보였다. ‘정신 차려 그냥 할 거 해’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그렇게 그냥 홀린 듯 불러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떴는데 A가 8개.
‘와, 나를?’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자주 드는 생각이다. 무대 앞에서 감정을 쏟고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참 무방비한 상태일 때가 많은데 그 무방비함에 손뼉을 쳐주는 게 하면서도 두려움이 동시에 오는 걸 경험한다.
심사위원분들이 뭐라 했는지는 방송을 봐야 기억이 날 듯하다. 하하. 다음 순서 보훈이는 역시 잘했다. 자식. 그렇게 1라운드가 끝나고 집에 가서 큰 생각 없이 잤다. 그냥 하나의 라운드가 끝남에 감사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생각으로 잤다. 생각이 많았지만 많아질 뿐…
그렇게 다 끝나고 마무리하다 보니 시간이 늦어진 채 방송국 앞에서 매니저 차를 기다렸다.
“노래 잘 들었어요!” 옆에서 말을 걸었다. 키는 나보다 큰데 더 말라 보이는 친구. 밤이어서 옷도 다 검은색으로 보였다.
“감사합니다. 잘하셨어요? 노래하실 때 제가 타이밍이 안 맞아서 못 봤어요.”
“저도 감사하게 다시 7개 받았어요”
“오 축하드려요!”
뭐 이런 식의 대화를 하고 집에 왔다.
그리고 그냥 잤다. 일단은 개운했으니까.